p.181~182
저는 시간이란 '환상'에 가깝다고 생각해요. 사람의 뇌는 시간의 흐름을 느낄 수 있어서, 시계를 만들거나 과학공식에 시간의 의미나 내용을 넣기도 해요. 하지만 이 세상에 정말로 시간이 존재하는지 존재하지 않는지는 아무도 증명하지 못했어요.
시간은 기억과 밀접한 관련이 있어요. 예를 들어 우리는 바깥이 어두워진 것을 보고 "아,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되었구나...."하고 시간이 흘렀다고 느낍니다. 이는 "바깥은 조금 전까지 밝았다."는 기억과 어두워진 현재 상황을 서로 비교하며 생각한 것이에요. 즉, 지난 기억이 없으면 시간의 흐름을 느낄 수 없죠.
그렇다면 이렇게도 생각할 수 있어요. '사람의 기억이 먼저 시간을 만들었고, 나중에 생활에 편리한 도구로 시계나 달력을 만든 게 아닐까?'라고요. 하지만 이렇게 생각한다면 시계가 알려주는 시간과 우리가 생각하며 파악하는 시간 중, 어느 시간이 진짜인지를 알 수 없게 됩니다.
p.198~200
지금 우리 눈앞에 있는 세계가 진짜 세계가 아닐 가능성은 큽니다. 어쩌면 미래에서 온 사람에게 보이는 '가상의 세계'일지도 몰라요. 후와후와 님이 보고 있는 것은 10분 전에 뇌에 집어넣은 정보일 수도 있고, 심지어 후와후와 님의 의식이 이 세상에 나타난 것도 10분 전의 일일지도 몰라요.
'오래 전부터 나는 존재해 왔기 때문에, 그런 일은 있을 수 없어요.'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어요. 그러나 '지금의 나'와 '어제의 나'가 같은 사람이라고 증명하는 것은 누구에게나 어려운 일입니다. 제가 지금 무슨 말을 하는지 여러분은 모를 거에요. 그러니 좀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이야기할게요.
사람은 일상의 모든 것들을 '기억'에 의지한다고 할 수 있어요. 지금의 자신과 어제의 자신이 같은 사람임을 느낄 수 있는 이유는 기억이 있기 때문이에요. 즉, 기억은 후와후와 님이 후와후와 님이 되기 위해 꼭 필요한 것이에요.
예를 들어 '다음 교차로에서 오른쪽으로 돌면 우체국이 있다.'고 알 수 있는 이유는 바로 기억 때문이에요. 사람은 아직 눈에 우체국이 보이지 않아도 과거의 경험에 따른 기억으로, 우체국이 그곳에 있음을 알 수 있어요. 그리고 사람은 자신의 기억이 '항상 옳다'고 믿어요. 그렇기 때문에 보이지 않는 우체국의 위치를 표시할 수 있는 거에요.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가 같은 사람이라고 느끼는 것도 이렇게 기억한 결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만 그러한 기억이 만들어 낸 세계는 오직 자신만의 것이에요. 여러분 옆자리에 앉은 친구는 자신의 기억에 따라서 이 세계를 보고 있어요. 따라서 내가 보는 세계와는 또 다를 거에요.
예를 들어 볼까요? 아지코 님의 뇌가 자신의 기억에 따라 '빨갛다'고 판단한 색과, 옆자리에 앉은 친구의 뇌가 기억에 따라 '빨갛다'고 판단한 색은 똑같지가 않아요. 왜냐하면 색을 인식하는 눈도, 눈으로 들어온 정보를 받는 뇌도, 뇌에 천천히 쌓이는 기억도, 모두 그 사람만의 것이니까요. 게다가 '빨강'이라는 색도, 피의 색, 엄마의 립스틱색, 장미꽃 색 등 여러 가지예요. 그것들을 자신의 기억에 맞추어 '이 정도로 진한 빨강', '이 정도 오렌지에 가까운 빨강'이라고 판단하는 거예요.
색깔만이 아니에요. 내가 보는 세계와 다른 사람이 보는 세계는 모든 게 다릅니다. 그렇게 생각해 보면, 결국 우리는 진짜 세계가 무엇인지 알 수 없게 되지요. 어쩌면 살아있는 사람의 수만큼 진짜 세계가 존재하는 걸지도 몰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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