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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노 아야코, <약간의 거리를 둔다> 1

by 울13 2024. 2.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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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내의 진실

동화 속 '요술봉' 하나만 있으면 원하는 모든 것이 내 손에 들어올 텐데, 그 마법의 봉을 구할 데가 없다는 것이 문제다.

이 요술봉을 대신할 수 있는, 그나마 유사한 무엇인가를 찾는다면 딱 하나 있다. 바로 인내다. 인내는 누구든지 원하기만 하면 손에 넣을 수 있다.

인내라는 말에는 깊은 뜻이 담겨 있다. 인간은 희망하는 것을 원하는 그 순간에 갖지는 못한다. 여러 가지 복잡한 상황에 놓여 있는 것이다. 몸이 아파서 얻지 못하는 경우도 있고, 내 몸은 건강한데 가족 중 누가 많이 아파서 열 일을 제쳐두고 간병에 나서야 할 때도 있다.

상황이 이렇더라도 인내하고 기다리면 언젠가는 나름의 성공을 거둔다. 돈은 행복의 전부가 아니다. 돈이 많다고 해서 원하는 모든 것을 손에 넣을 수 있는 건 아니다. 하지만 인내는 다르다. 오랫동안 인생을 살면서 알게 되었다. 돈으로도 얻지 못하는 것을 인내로는 얻을 수 있다. 성공의 유일한 열쇠는 인내인 것이다.

범죄자에게 부족한 것은 재능이나 학력이 아니다. 인내다. 최근에 일어난 사건들만 봐도 알 수 있다. 인내하지 못하고 욕심이 향하는 대로 문제를 일으킨다.

소설가의 작업은 인내 그 자체다. 수천 매의 작품이 완성되기까지 한 글자, 한 글자씩 매일 써내려가야 한다. 요리사도, 콘크리트 기사도, 농부도 모두들 인내를 기본으로 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인내가 가장 필요한 곳은 사랑이다.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을 보여줘야 할 때다. 상대를 소중히 생각한다면 그의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견딘다. 절대로 버리지 않는다. 인내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인간을 받들어주는 힘이다.

 

애쓰지 않는다

나이가 들고부터는 큰 방향을 정하고나면 사소한 것들은 그냥 흘러가는 대로 내버려둔다. 어쩌면 그 반대인지도 모르겠다. 인간이 결정할 수 있는 문제는 고작 저녁찬거리 정도다. 찬거리라고 해도 막상 마트에 들러 본격적인 쇼핑이 시작되면 예정한 품목 따위는 까맣게 잊어버린다. 운명은 마트에서 장보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다. 인간이 자신의 운명 중에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것은 없다. 우리가 20세기 종반에 지금의 부모 밑에서 태어난 것은 우리의 의지가 아니었다. 우리는 그 운명을 겸손하게 받아들여야만 한다.

흘러가는 대로 내버려두는 것. 그것이 내 삶의 미의식이다. 왜냐하면 인간은 죽기 전까지 막연히 흘러가는 게 전부이기 때문이다. 쓸데없이 저항하기보다는 당당하게, 그리고 묵묵히 주변 사람들과 시대의 흐름을 따라가고 싶다.

한집에서 같이 사는 가족일지라도 실은 서로 고독하다. 왜냐하면 각자 나름대로 살아갈 것을 신에게 명령받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삶들은 누구 하나 칭찬해주지 않더라도 그 자체로 훌륭하게 완결되어 빛난다. 자기 행위를 타인에게 평가받지 못해 안절부절못하는 사람들은 버둥거릴 수밖에 없다. 내가 만족할 수 있는 삶을 보내고 있다면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행복하다는 자신감이 중요하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나는 질리지도 않고 많은 것들을 소망해왔다. 그러나 어느 사이엔가 내가 소망하더라도 신이 원치 않는다면 그 일은 절대로 이루어질 수 없음을 깨닫게 되었다. 아니 이런 표현은 올바르지 못하다. 어차피 내 인생에서 벌어질 수 없는 일들은 절대로 벌어지지 않는 법이다.

여기서 결과에 불복하느냐 또는 이 결과를 신의 의지로 읽어낼 수 있느냐의 차이는 매우 크다. 나는 어려서부터 단념을 잘하는 아이였는데, 순순히 결과를 인정하는 게 중점은 아니다. 소원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결과에서 신의 깊은 배려를 찾아내는 것. 여기까지 생각할 수 있느냐가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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