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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탁, <곰탕>

by 울13 2024. 2.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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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경험하지 못한 사람은 모든 걸 동경하거나 무엇도 기대하지 않게 된다. 우환은 기대하지 않는 아이로 자랐다. 일찍부터 너무 많은 게 빤해 보였다. 고아원을 도망치는 것도, 다른 부모에게 가는 것도, 그냥 다 빤해 보였다. 해본게 아무것도 없어서 우환은 그냥 다 빤한 거라고 생각했다.

종인에게 비법이 있다면 기다리는 동안 다른 걸 하지 않는 거였다. 종인은 기다려야 할 때 기다리는 것에만 집중했다. 지루한 시간이 정직하게 흐르고 있었다. 종인은 기다림에 정직한 사람이었다. 분과 초 사이에서 게으른 사람이었다.

남들보다 몇 겹은 더 되는 삶을 산 것처럼 보였던 아버지였다. 어쩌면, 이런 긴 하루들이 거듭되어 그 겹을 만들었는지도 몰랐다. 하지만 순희는 처음으로 그 겹이 불행으로만 보이지 않았다.

그렇지만 자신도 그렇게 살 수 있을지는 몰랐다.

할아버지의 이름은 뭔지 몰랐다. 하지만 이종인, 이라는 이름이 맞는지 굳이 확인하지 않아도 된다. 이 사람의 이름이 무엇이든, 이 남자는 이순희의 아버지이기 때문에 나의 할아버지가 된다. 이 남자가 싫고 좋고 상관없다. 그냥, 아버지의 아버지이기 때문에 나아게 할아버지가 된다. 가족이란 그런 거였다. 이유 없이 정해지는 것들이 너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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