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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자이 오사무, <인간 실격> 첫 번째 수기 ​ 부끄럼 많은 생애를 보냈습니다. 저는 인간의 삶이라는 것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 제가 가진 행복이라는 개념과 이 세상 사람들의 행복이라는 개념이 전혀 다를지도 모른다는 불안. 저는 그 불안 때문에 밤이면 밤마다 전전하고 신음하고, 거의 발광할 뻔한 적도 있었습니다. 저는 과연 행복한 걸까요? 저는 어릴 때부터 정말이지 자주 참 행운아다, 라는 말을 들어왔습니다. 하지만 저 자신은 언제나 지옥 가운데서 사는 느낌이었고, 오히려 저더러 행복하다고 하는 사람들 쪽이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훨씬 더 안락해 보였습니다. ​ 생각하면 할수록 사람이란 것이 알 수가 없어졌고, 저 혼자 별난 놈인 것 같은 불안과 공포가 엄습할 뿐이었습니다. 저는 이웃 사람하고 거의 대화를 못 나눕니다. 무.. 2024. 2. 10.
아쿠타카와 류노스케 단편선, <흙 한 덩이> 스미는 그저 망연히 며느리의 얼굴만 쳐다보고 있었다. 그러는 동안 그녀의 마음에 한 가지 사실이 분명해져 왔다. 그것은 아무리 몸부림을 쳐 봤자, 눈을 감기 전에 도저히 편해질 수 없으리라는 사실이었다. ​ "저기, 할머니. 우리 엄마가 엄청 훌륭한 사람이야?" "왜?" 스미는 칼을 내려놓고 손자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아니, 선생님이 도덕 시간에 그렇게 말씀하시더라고. 히로지네 어머니는 이 근처에 둘도 없이 훌륭한 사람이라고." 스미는 우선 당황스러웠다. 잠시 당황했던 스미는 발작적인 분노에 사로잡혀 사람이 변한 듯이 다미를 향해 욕지거리를 퍼붓기 시작했다. "암, 거짓말이지. 새빨간 거짓말이야. 네 어미라는 사람은 말이다. 밖에서는 엄청 일을 하니까 남들 앞에서는 훌륭해 보이지만 속은 고약한 사람이.. 2024. 2. 10.
김영탁, <곰탕> 아무것도 경험하지 못한 사람은 모든 걸 동경하거나 무엇도 기대하지 않게 된다. 우환은 기대하지 않는 아이로 자랐다. 일찍부터 너무 많은 게 빤해 보였다. 고아원을 도망치는 것도, 다른 부모에게 가는 것도, 그냥 다 빤해 보였다. 해본게 아무것도 없어서 우환은 그냥 다 빤한 거라고 생각했다. ​ 종인에게 비법이 있다면 기다리는 동안 다른 걸 하지 않는 거였다. 종인은 기다려야 할 때 기다리는 것에만 집중했다. 지루한 시간이 정직하게 흐르고 있었다. 종인은 기다림에 정직한 사람이었다. 분과 초 사이에서 게으른 사람이었다. ​ 남들보다 몇 겹은 더 되는 삶을 산 것처럼 보였던 아버지였다. 어쩌면, 이런 긴 하루들이 거듭되어 그 겹을 만들었는지도 몰랐다. 하지만 순희는 처음으로 그 겹이 불행으로만 보이지 않았다.. 2024. 2. 10.
소노 아야코, <약간의 거리를 둔다> 2 모순이 생각하는 힘을 준다 세상은 모순투성이이다. 그리고 이 모순은 인간에게 생각하는 힘을 준다. 모순 없이 만사가 계산대로 척척 진행되었다면 인간이라는 존재는 처치 곤란한 장애물이 되었으리라고 확신한다. 생각이라는 게 필요 없을 만큼 세상이 공리적이고, 그래서 신앙과 철학이 무의미하며 정의가 완수되어 불만이 사라진 세계는 행복할 리 없다. 역설적이게도 인간이 인간답게 숭고해질 수 있는 까닭은 세상이 매우 불완전한 곳이었기 때문이다. 정의는 행해지지 않고 약육강식이 난무하며, 사람들은 권력과 금전에 수시로 유혹을 받는다. 그래서 우리는 그것들에 저항하고자 보다 인간적인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 인생은 좋았고, 때로 나빴을 뿐이다 이 나이가 되고 보니 지내온 인생에서 운이 좋았던 순간과 운이 없었던 날의.. 2024. 2.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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