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전체 글129 아쿠타카와 류노스케 단편선, <흙 한 덩이> 스미는 그저 망연히 며느리의 얼굴만 쳐다보고 있었다. 그러는 동안 그녀의 마음에 한 가지 사실이 분명해져 왔다. 그것은 아무리 몸부림을 쳐 봤자, 눈을 감기 전에 도저히 편해질 수 없으리라는 사실이었다. "저기, 할머니. 우리 엄마가 엄청 훌륭한 사람이야?" "왜?" 스미는 칼을 내려놓고 손자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아니, 선생님이 도덕 시간에 그렇게 말씀하시더라고. 히로지네 어머니는 이 근처에 둘도 없이 훌륭한 사람이라고." 스미는 우선 당황스러웠다. 잠시 당황했던 스미는 발작적인 분노에 사로잡혀 사람이 변한 듯이 다미를 향해 욕지거리를 퍼붓기 시작했다. "암, 거짓말이지. 새빨간 거짓말이야. 네 어미라는 사람은 말이다. 밖에서는 엄청 일을 하니까 남들 앞에서는 훌륭해 보이지만 속은 고약한 사람이.. 2024. 2. 10. 김영탁, <곰탕> 아무것도 경험하지 못한 사람은 모든 걸 동경하거나 무엇도 기대하지 않게 된다. 우환은 기대하지 않는 아이로 자랐다. 일찍부터 너무 많은 게 빤해 보였다. 고아원을 도망치는 것도, 다른 부모에게 가는 것도, 그냥 다 빤해 보였다. 해본게 아무것도 없어서 우환은 그냥 다 빤한 거라고 생각했다. 종인에게 비법이 있다면 기다리는 동안 다른 걸 하지 않는 거였다. 종인은 기다려야 할 때 기다리는 것에만 집중했다. 지루한 시간이 정직하게 흐르고 있었다. 종인은 기다림에 정직한 사람이었다. 분과 초 사이에서 게으른 사람이었다. 남들보다 몇 겹은 더 되는 삶을 산 것처럼 보였던 아버지였다. 어쩌면, 이런 긴 하루들이 거듭되어 그 겹을 만들었는지도 몰랐다. 하지만 순희는 처음으로 그 겹이 불행으로만 보이지 않았다.. 2024. 2. 10. 소노 아야코, <약간의 거리를 둔다> 2 모순이 생각하는 힘을 준다 세상은 모순투성이이다. 그리고 이 모순은 인간에게 생각하는 힘을 준다. 모순 없이 만사가 계산대로 척척 진행되었다면 인간이라는 존재는 처치 곤란한 장애물이 되었으리라고 확신한다. 생각이라는 게 필요 없을 만큼 세상이 공리적이고, 그래서 신앙과 철학이 무의미하며 정의가 완수되어 불만이 사라진 세계는 행복할 리 없다. 역설적이게도 인간이 인간답게 숭고해질 수 있는 까닭은 세상이 매우 불완전한 곳이었기 때문이다. 정의는 행해지지 않고 약육강식이 난무하며, 사람들은 권력과 금전에 수시로 유혹을 받는다. 그래서 우리는 그것들에 저항하고자 보다 인간적인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인생은 좋았고, 때로 나빴을 뿐이다 이 나이가 되고 보니 지내온 인생에서 운이 좋았던 순간과 운이 없었던 날의.. 2024. 2. 10. 소노 아야코, <약간의 거리를 둔다> 1 인내의 진실 동화 속 '요술봉' 하나만 있으면 원하는 모든 것이 내 손에 들어올 텐데, 그 마법의 봉을 구할 데가 없다는 것이 문제다. 이 요술봉을 대신할 수 있는, 그나마 유사한 무엇인가를 찾는다면 딱 하나 있다. 바로 인내다. 인내는 누구든지 원하기만 하면 손에 넣을 수 있다. 인내라는 말에는 깊은 뜻이 담겨 있다. 인간은 희망하는 것을 원하는 그 순간에 갖지는 못한다. 여러 가지 복잡한 상황에 놓여 있는 것이다. 몸이 아파서 얻지 못하는 경우도 있고, 내 몸은 건강한데 가족 중 누가 많이 아파서 열 일을 제쳐두고 간병에 나서야 할 때도 있다. 상황이 이렇더라도 인내하고 기다리면 언젠가는 나름의 성공을 거둔다. 돈은 행복의 전부가 아니다. 돈이 많다고 해서 원하는 모든 것을 손에 넣을 수 있는 건 아.. 2024. 2. 10. 이전 1 ··· 28 29 30 31 32 33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