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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샌델,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 中

by 울13 2024. 2.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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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시장과 도덕

p.28

삶 속에 나타나는 좋은 것은 상품화하면 변질되거나 저평가된다. 시장에 속한 영역이 무엇인지, 시장과 거리를 두어야 할 영역이 무엇인지 판단하려면, 해당 재화, 즉 건강,교육,가정생활, 자연, 예술, 시민의 의무와 같은 재화의 가치를 평가하는 방법을 결정해야 한다. 이는 단순히 경제적인 문제에 그치지 않고 도덕적이면서 정치적인 문제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사례별로 이러한 재화의 도덕적 의미와 재화 가치의 적절한 평가방법에 관해 토론을 벌여야 한다.

시장지상주의 시대에는 이러한 토론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 결과, 이러한 문제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그렇게 하겠다고 결정하지도 않은 채, 우리는 시장경제를 가진 시대에서 시장사회를 이룬 시대로 휩쓸려왔다.

두 개념의 차이는 이렇다. 시장경제는 생산활동을 조직하는 소중하고 효과적인 도구다. 이에 반해서 시장사회는 시장가치가 인간활동의 모든 영역에 스며들어간 일종의 생활방식이다. 시장사회에서는 시장의 이미지에 따라 사회관계가 형성된다.

우리는 시장경제를 원하는가 아니면 시장사회를 원하는가?

p.33

시장이 지닌 매력 중 하나는 스스로 만족하는 선택에 판단을 내리지 않는다는 점이다. 시장은 재화의 가치를 평가하는 방식이 다른 것보다 기준이 높은지, 혹은 더 가치가 있는지 따지지 않는다.

(...)

시장은 훌륭한 선택과 저급한 선택을 구별하지 않는다. 거래하는 쌍방은 교환 대상에 어떤 가치를 둘지 스스로 판단할 뿐이다.

이렇듯 재화에 대한 가치판단이 배제된 태도가 시장논리의 핵심이며, 시장이 지닌 매력을 상당 부분 설명해준다. 하지만 시장을 포용하면서 도덕적, 정신적 논쟁을 꺼리는 태도 때문에 우리는 무거운 대가를 치르고 있다.

  1. 새치기

특정 재화를 시장논리로 분해할지 줄서기로 분배할지 아니면 다른 방식으로 분배할지 결정하기 전에, 우리는 그것이 어떤 종류의 재화인지, 어떻게 가치를 매길 것인지 결정해야 한다.

2. 인센티브

P.78

과거 경제학자들은 인플레이션과 실업, 저축과 투자, 금리와 해외 무역처럼 명백히 경제적인 주제들을 다루었다. 그러나 요즘 경제학자들은 더욱 야침찬 계획을 세우고 있다. 그들은 경제학이 단순히 물적 재화의 생산과 소비를 파악하는 통찰력을 제공할 뿐만 아니라 인간행동을 설명하는 과학이라고 주장한다. 삶의 모든 영역에서, 사람은 눈앞에 놓인 선택사항에 대해 비용과 이익을 저울질하고 자신에게 최대의 행복이나 효용을 안겨주리라 생각되는 것을 선택한다고 가정함으로써 인간의 행동을 설명하는 것이다. 이러한 개념이 옳다면 무엇이든 가격을 매길 수 있다.

(......)

과연 인간의 모든 행동을 시장 개념으로 이해할 수 있을까? ...하지만 확실한 것은, 학계뿐 아니라 일상생활에서도 시장개념이 매우 강력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P.98

경제학자들은 흔히 시장은 무기력해서 스스로 통제하는 재화에 관여하거나 이를 손상시키지 않는다고 가정한다. 하지만 이것은 사실이 아니다. 시장은 사회 규범에 흔적을 남긴다. 종종 시장 인센티브는 비시장 인센티브를 잠식하거나 밀어낸다.

p.124

오늘날 경제학이 다루는 주제의 범위는 본래 전통적인 범위보다 훨씬 넓어졌다. 그레고리 맨큐가 자신의 영향력 있는 경제학 교과서의 최근 개정판에서 제시한 경제에 관한 정의를 생각해보다. "'경제'가 무엇인지는 분명하다. 경제는 사람들의 무리가 살아가면서 상호작용하는 것일 뿐이다."

이러한 설명에서 경제학은 물적 재화의 생산, 유통, 소비를 다룰 뿐 아니라 일반적으로 인간의 상호작용과 개인이 결정을 내리는 원칙을 다룬다. 맨큐에 따르면 이들 중 가장 중요한 원칙은 "사람은 인센티브에 반응한다"는 것이다.

(......)

경제학을 인센티브의 학문으로 생각하는 것은 시장의 영향력을 일상생활까지 확대하는 것 이상을 의미한다.

(......)

인센티브는 시장을 보이지 않는 손으로 보는 애덤 스미스의 생각과는 거리가 멀다. 일단 인센티브가 '현대 삶의 초석'이 되면 시장은 강압적이며 조작적인 손으로 보인다.

스티븐 레빗과 스티븐 더브너는 "도덕은 우리가 세상을 움직이고 싶은 방식을 가리키고, 경제학은 세상이 실제로 적용하는 방식을 가리킨다"고 말했다. 그러나 경제적 인센티브를 적용하려면 그것이 장려해야 할 태도와 규범을 변질시키는지 따져봐야 한다. 경제학자들은 결국 '도덕적으로 거래'해야 한다.

3. 시장은 어떻게 도덕을 밀어내는가

p. 170

내제적으로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활동에 참여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돈을 지급하면 그들의 내재적 흥미나 헌신을 '밀어내거나' 그 가치를 떨어뜨려 동기유발을 약화시킬지 모른다.(......)

"밀어내기 효과는 경제학에서 가장 중요한 이례적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금전적 인센티브를 인상하면 공급이 늘어난다는 가장 근본적인 경제학 '법칙'을 거스르기 때문이다. 밀어내기 효과가 작용하는 경우에는 금전적 인센티브를 인상하면 공급은 늘지 않고 오히려 감소한다." cf) 리처드 티트무스, <헌혈에 관한 고전적 연구>

(......)

"인간 활동의 한 영역에서 이타주의 정신이 쇠퇴하면 다른 영역에 속한 태도, 동기, 관계에도 비슷한 변화가 찾아올 가능성이 있다."

p.177

"우리는 정당하게 행동함으로써 정당해지고, 절제함으로써 절제하는 사람이 되고, 용감하게 행동함으로써 용감해진다"(아리스토텔레스). 이타주의, 관용,결속, 시민 정신은 사용할수록 고갈되는 상품이 아니다. 오히려 운동하면 발달하고 더욱 강해지는 근육에 가깝다.

시장 지향 사회의 결함 중 하나는 이러한 미덕이 쇠약해지게 방치하는 것이다. 우리의 공공 삶을 회복하려면 좀 더 부지런히 미덕을 행사해야 한다.

 

4. 삶과 죽음의 시장

전통적으로 '삶과 죽음'은 시장에서 금기시되는 영역이었다. 하지만 이곳에 시장논리가 침투하면서 이를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와 가치관에 변화가 생겼다. 유가족에게 재정적 안전망을 제공하려고 생긴 생명보험은 투기를 목적으로 그 증서를 사고파는 것이 허용되면서 타인의 죽음을 애타게 기다리게 하고, 웹사이트에서 유명인의 죽음을 놓고 도박을 벌이는 행위도 공공연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과연 시장의 영역은 어디까지인가? 시장이 제공하는 효용과 선을 위해서라면 도덕성으 잠식시키는 시장 관행은 감내해야 하는 것일까?

p.222

때로 우리는 시장이 제공하는 사회적 선을 위해서라면 도덕성을 잠식한 시장 관행을 감내하겠다고 결정한다. 생명보험은 이런 식의 타협으로 시작되었다. 예기치 못한 죽음으로 생겨날 수 있는 재정적 위험에 대해서 가족과 사업체를 보호하기 위해, 사회는 지난 두 세기 넘게 한 개인의 생명에 피보험 이익을 가진 사람들이 사망을 놓고 도박을 벌이도록 허용해야 한다고 마지못해 결론 내렸던 것이다. 하지만 투기를 향한 유혹을 억제하기는 어려웠다.

5. 명명권

p.238

스카이박스는 자신을 다른 사람들과 분리시키려는 엘리트들의 열망과 욕구를 부추긴다. 한때 모든 계층의 사람들이 한데 어울려 즐겼던 프로 스포츠가 오히려 지금은 계층간 차이를 부각시키고 있다.

p.242

머니볼

빌리빈 단장이 이끄는 애슬레틱스는 통게학적 분석을 사용해서 야구계에서 제 실력을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선수들을 가려내고 인습적인 야구지식에서 벗어난 전략을 구사해서 비용을 많이 들이지 않고 경쟁력 갖춘 팀을 구성할 수 있었다.

애슬레틱스의 이야기는 현명한 투자가라면 시장 비효율성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수익을 올릴 수 있다는 사실을 입증한 실례였다. 빌리 빈은 정량적 트레이더라는 새로운 집단이 월스트리트에 도입한 이론을 야구에 적용했다. (......)

과학적인 머니볼 접근법에 담긴 지혜가 인간 활동의 어느 영역까지 확신산되었을까? 환경규제 분야에서는 '헌신적인 운동가들과 변호사들'을 밀어내고 '비용-수익 분석에 유능한 사람들'로 대체되었다.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는 '똑똑한 경제학자들과 MBA'가 과거 영향력을 행사했던 현명하고 젊은 변호사들보다 중요해졌다.

(......)

경제학자들의 말대로라면 머니볼 전략은 야구를 더욱 효율적으로 만든다. 하지만 야구경기가 향상되었을까?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머니볼 전략은 최근에 발생하고 있는 시장 침입 현상과 마찬가지로 야구 자체를 망치지는 않았지만 경기의 재미를 떨어뜨렸다.

이는 내가 이 책에서 다양한 재화와 홀동에 관해 말하려 했던 요점이기도 하다. 시장을 좀 더 효율적으로 만드는 일 자체는 미덕이 아니다. 진정한 문제는 이런저런 시장 체제를 도입하는 것이 경기의 선을 향상시키는지 훼손시키는지 여부다.

광고의 자리

p.257

지나친 상업주의에 대한 반박은 첫째, 경제적 필요로 인한 강압이지 사실상 개인의 자유로운 선택이 아니라는 것이고, 둘째, 그것 자체가 부패와 타락이라는 점이다. 기업의 후원을 받은 광고 문신을 이마에 새기고 도라다니늑 서은 비록 자발적인 선택으로 거래가 이루어졌다 하더라도 개인의 품위를 떨어뜨리는 행위다.

p. 258

일부 광고는 그 자체로는 문제가 안 되더라도 사회를 전체적으로 상업화시키는 데 기여할 수도 있다. 이산화탄소를 배출하는 행위 자체는 잘못이 아니지만 지나치게 많이 배출하면 환경을 파괴하듯이, 새로운 영역으로 팽창한 광고가 처음에는 받아들여질 만하더라도 지나치게 광범위하게 퍼지면 사회 전체가 기업 후원과 소비지상주의의 지배를 받는다.

p. 275

우리는 어떤 사회에서 살고 싶은가? 명명권과 시정 마케팅이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세상을 점유하면서 공적 성격을 약화시킨다. 상업화는 특정 재화를 훼손할 뿐 아니라 공통성을 잠식한다. 돈으로 살 수 있는 대상이 많아질수록 각계각층 사람들이 서로 마주칠 기회를 줄어든다.(......)

과거에 야구경기장에서 여러 계층의 사람들이 한데 섞여 응원했던 경험이 사라지고 있는 현상은 스카이박스를 올려다보는 사람뿐 아니라 그곳에서 내려다보는 사람들에게도 상실이다.

(......)

불평등이 점차 심화하면서 모든 것이 시장의 지배를 받는 현상은 부유한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들의 삶이 점차 분리되고 있다는 의미다. 우리는 서로 다른 장소에서 살고 일하고 쇼핑하며 논다. 우리 아이들은 서로 다른 학교에 다닌다. 우리는 이러한 현상을 가리쳐 스카이박스화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이는 민주주의에 좋지 않으며 만족스러운 생활방식도 아니다.

민주주의는 완벽한 평등을 필요로 하지는 않지만 시민에게 공동체적 생활을 공유할 것을 요구한다. 그러려면 배경, 사회적 위치, 태도, 신념이 서로 다른 사람들이 매일 생활하며 서로 마주하고 부딪치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야 서로의 차이를 견뎌내고 이를 놓고 협상하고 공공선에 관심을 쏟는 법을 배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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